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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올킬' MC딩동 덧글 0 | 조회 524 | 2016-05-07 00:00:00
관리자  

분명 가수는 아닌데 신곡 쇼케이스마다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무대 진행과 인터뷰를 주도하고 있는 MC딩동이다.

지난해 걸스데이, 마마무, 다비치, SG워너비 등 쇼케이스만 29건 진행했고 비스트, 블락비, 위너 등 팬미팅에서만 24차례 마이크를 잡았다.


가수 행사의 80~90%는 MC딩동이 맡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걸스데이의 소속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의 나상천 이사는 "진부한 분위기를 유쾌한 웃음으로 바꾸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MC딩동의 매력을 설명했다.

쇼케이스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는 "내용없는 인터뷰로 끝날 수있는 현장도 어떻게 해서든 기사화 될 수 있는 대화로 이끌어간다"고 평가했다.

-가수들 쇼케이스에 안 나오는 곳이 없다.

"쇼케이스를 위해 공연장마다 특성을 다 공부했다. 동선, 화술, 사진 잘 나오는 각도 등 내가 아는 범위에서 노하우를 전달해주고 있다. 별을 빛내기 위해선 밤이 필요하지 않나. 나는 밤하늘이란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처음에는 별이 되려고 했을텐데.

"물론 별을 꿈꿨다. 지금도 꿈꾼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위치가 있다. 별이 너무 많으면 별이 보이지 않는다. 적게 있어야 빛나지 않나. 그럴봐에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것도 의미있다고 봤다."

-여전히 방송국에서 사전 MC를 많이 보고 있다.

"사전 MC는 제작진과 방청객 사이에서 소방수다. 5분 안에 분위기를 확 띄워야 한다. 2년 간 대기실이 없는데 다리가 아파서 좌변기에 앉아있던 적도 있다. 아직도 사전MC를 하냐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어떤 무대라도 내겐 소중하다. 좌우명이 '혀에 땀나도록 말하자'다. 침이요? 이거 땀입니다."

-사전 MC를 보기엔 많이 유명해진 것 아닌가.

"신동엽, 유재석, 유희열 등 MC의 교과서가 눈 앞에 있으니 설레고 떨린다. 교과서를 쓴 저자로부터 과외를 받는 셈이다. 게다가 돈도 안 내고…. 현장 공부가 내게 행복이다."

/-따로 가르침을 받은 것도 있나.

"신동엽 선배가 용기를 많이 준다. '마이라고 하지 말고 재킷이라고 해라. 그래야 방송에서 쓸 수 있다' '심한 농담해도 스킨십을 시도해봐라. 그러면 금방 풀어진다' 등 누구에게 절대 얘기 안 해주는 부분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까봐 늘 조심스러워 하는 분인데 내겐 애정을 갖고 말해줘 무척 고맙다. '불후의 명곡'에서 가수들은 전설이 앉아 있으니 떨리다는데 내게 전설은 신동엽이라서, 그의 진행을 눈앞에서 보는 게 떨린다.

-남모르게 했던 피나는 훈련이 있다면.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거울을 본다. 자존심은 두고 자신감은 갖고 가자고 중얼거린다. 노래방 가서 마이크를 훔쳐다가 집에서 매일 연습했던 적도 있다. 마이크를 쥐고 사는 직업 아닌가. 손에 굳은살이 여기저기 있다. 목에도 굳은살이 있어 어지간하면 쉰목소리가 나올 일이 없다."

-그 덕에 이제는 수입이 상당하겠다.

"2014년 갤럽에서 조사한 대한민국 직장인 연봉 순위로 치면 상위 0.5%다. 정찰제가 아니라서 들쑥날쑥 하다. 세월호와 천안함 사고가 났을 때 1년을 무작정 쉴 수 밖에 없었다. 불과 3년 전까지 상위 100%였는데 이제 보상받는 느낌이다. 31세 때 연봉은 60만원이었다. 결혼할 때 700만원 받고 대출 광고까지 찍었다. 나를 통해 대출 부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더라. 어머니는 친구들 만나서 아들 얘기 나오면 금융쪽에 있다고 말하며 다니셨다."

-연봉 60만원으로 생활이 가능했나.

"서른 살까지 대학로 고시원에 살았다. 공동 냉장고가 있는데 남의 반찬 먹다가 경찰서까지 갈 뻔했다. SBS 신인개그맨 선발대회에서 대상 받고 인생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무렵 '웃찾사'가 없어지면서 대학로에서 공연 포스터 붙이고 살았다. 개그맨 여덟명이 그 좁은 반지하에서 같이 살았다. 한두명씩 없어졌다. 북적하다가 혼자있으니 환청이 들리더라. 하루는 연예인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서 갔는데 알고 보니 MC로 쓸려고 부른 것이었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서 인천 집으로 다시 갈까 결심했다. 버스비 2,000원이 없어서 못갔다. 그 때 2,000원만 있었다면 지금의 MC딩동은 없었을 것이다."

-웬만한 정신력 없이는 견디기 어려웠겠다.

"불교 신자인데 서울에서 처음 행사한 곳이 교회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어떤 누군가가 당신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당신에게 날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아, 지금 내가 힘든 게 죽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최근 딩동해피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렸다.

"함께 배우고 공유하는 곳이다. MC군단을 만들고 싶다. 무대 위에서 말하고 싶은 사람을 도와주고 무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아이돌=SM'처럼 MC업계에서 검증된 크루로 성장시켜서 브랜드화 시키고 싶다."

-MC딩동의 시대가 열린 건가.

"배고프지 않은데 허기진다. 아직 연습생 8년차다. 얼마나 더 내공을 쌓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TV에 나올 수 있을까. 어머니께서 내가 뭐하는지 확실히 알릴 수 있을까. 최근 정말 좋은 TV를 사드렸다. 아들이 이제 TV 나올 것이니 좋을 걸로 보라고. 아직 TV에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어머니가 모를만한 프로그램이다. 세상이 아직 내게 문을 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세상이 날 버렸다고 생각 안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날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MC딩동의 미래를 상상해보자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KBS 연예대상 공로상을 한 번 상상해본다. 그 동안 KBS에서만1,200만 방청객을 만났다. '명량'을 이겼다. 잘 버티면 전 국민을 거의 다 볼 것 같다.또 내가 사회 본 쇼케이스의 아이돌 그룹이 다 잘 돼서 MC딩동의 이름으로 공연을 열고 싶다. 다 모으면 아마 1주일짜리 공연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웃음). 한번쯤 해보는 상상이다."

사진=이호형 기자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